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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Book, One Action

누구나 진정으로 해야하는 일은 오직하나. 데미안(by 헤르만헤세)

by 꿈 많은 여우 2024. 2. 11.

일찍이 인간의 영혼들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을 우리 영혼 속에 가지고 있지. 이제까지 존재했던 모든 신과 악마는, 그것이 그리스인들에게 있었던, 중국인들에게 있었건,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있었건 간에 모두 우리 안에 함께 있소.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 거기 있는 거요. 전혀 교육받지 못한 평범한 아이 하나만을 남기고 인류가 멸망해 버린다 해도, 그 아이는 사물의 모든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요. 신들, 악마들, 낙원, 계율과 금기, 구약과 신약, 모든 것을 그 애는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거야. 

 

모든 해답은, 우리의 영혼속에 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영혼을 들여다 보는 일 부터 시작 할 것.

인간은 자연의 일부. 자연속에서 모든것은 회귀한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통해 배우는것도 중요하다.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브락사스라하고,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이고, 자기 안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지니고 있어. 아브락사스는 자네의 어떤 생각에도 반대하지 않고, 어떤 꿈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걸 잊지 말게. 그러나 자네가 언제고 흠잡을 데 없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면, 아브락사스가 자네를 떠나. 자네를 떠나서 자신의 사상을 담아 요리할 새 그릇을 찾는 거지.

 

아브락사스란, 결국 내 스스로 만들어낸 내면의 인도자이다. 

아브락사스를 인정하고 내면이 단단해져 흔들림이 없어졌을 때, 다만 내면속의 아브락사스를 잊고 사는것 뿐.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우린 그 눈가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내면에 들어앉아 있는 무엇인가를 미워하는 거야. 우리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거든.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을때, 내 내면부터 들여다 볼 것. 미워하는 마음이야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이유를 이해한다면, 그로인한 고통은 덜하지 않을까. 맹목적인 미움은 나 자신에게 독소를 퍼트린다.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왔는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전혀 나쁜 뜻이 없었고, 파국은 상상도 못했다.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고 한 말이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약간 재치 있고 조금 심술궂은 별것 아닌 생각을 그냥 내뱉은 것인데, 그게 운명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부주의한 작은 횡포를 저질렀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심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자신의 사소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싱클레어. 

인간은 모두 생각의 폭, 시야의 폭,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이러한 일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나이가 들 수록 그걸 더 잘 알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지고, 말하기에 용기가 없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말 공부. 이것도 학교에서 가르쳐 주면 참 좋을 텐데. 

 

 

피스토리우스는 주제넘고 배은망덕한 제자의 공격을 소리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아무 말 않고 내가 옳다고 해 줌으로써, 내 말을 운명으로 인정함으로써,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게 하고, 내 경솔함을 천 배나 더 크게 만들었다. 공격할 때 나는 방어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을 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보니 그는 조용하고 참아 내는 사람, 말없이 항복하는 무방비 상태의 사람이었다. 

 

때로는, 침묵이 복수(?)가 될 수도 있다. 상대가 성숙한 사람일 경우에는 말이다. 

 

 

누구나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임의의 어떤 운명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운명을 찾는 것이고, 그 운명을 자기 내면에서 온전히 끝까지 살아 내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이고, 도피의 시도이고, 대중의 이상으로의 재도피이며, 적응이자 스스로의 내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도피하는 삶을 더 많이 사는것 같다. 왜? 그게 편하니까. 

자기 자신에게 이르렀을때, 온전히 끝까지 내 운명대로 사는 것에 이르렀을때의 그 편안함. 진짜 기쁨. 진짜 행복, 진짜 편안함.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

도피로 인한 편안함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이 있다. 

 

우리가 의무요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각자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내면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따라 그 뜻대로 살며, 알 수 없는 미래가 무엇을 가져오든 그에 대한 준비를 하며 사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밝은 세계건, 어두운 세계건,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좋고 나쁜것은 없으며, 중요한건 내면의 요구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미래가 오든,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슬퍼하고 있지 않아요, 어머니. 그저 이 새로운 징후들의 수수께끼를 조금 풀어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네요. 오려고 하는건 어느날 갑자기 닥쳐와 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걸 겪게 되겠지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건 우리에게 경험을 준다. 알아야만 하는 것. 

결국,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내가 겪어야만 하는 것이고 알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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