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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Book, One Action

토닥토닥, 우리의 한스! 수레바퀴 아래서(by 헤르만헤세)

by 꿈 많은 여우 2022. 11. 23.
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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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고전 소설이 주는 큰 감동을 느끼고, 헤르만 헤세의 또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학창 시절 고전문학으로 수 없이 들었던 제목인데 이제야 무슨 내용일지 궁금해졌습니다. 다행히도 세계문학전집이 리디북스(RIDI BOOKS)에 다 있어서 e-book으로 보았네요. (리디북스 짱 ㅋㅋ)

이 책은 독일의 시골마을에서 가부장적이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 똑똑한 학생 한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후기들을 보면 대부분 그 시대 교육체계의 문제점과 억압적인 분위기와 공부와 시험성적만이 모범생으로 간주되는 교육자와 어른들의 몰이해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한스가 성장하는 동안 어른이 되어가는 내면의 과정에 집중했습니다. 헤르만헤세 특유의 철학적 내면에 대한 표현에 깊게 공감하고 감동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스가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는, 어른들의 기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래 친구들 보다 우월감을 갖게 되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반항하지 않고 수긍한 부분도 있습니다.
한스는 그 어렵다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며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하일너'와 절친이 되면서 인간의 다양성을 깨닫고, 하일너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이쯤 되니 한스는 책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제가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한스의 정신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네요.

한스는 신경쇠약증으로 신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중간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부끄러워 피해 다니기도 하던 한스는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여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슬픈 우월감에 빠져 있을 때 한스를 살게 한 것은 구둣방 조카 '에마'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한스가 자살하지 않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네요.) 사랑에 빠진 한스는 세상 만물의 존재 하나하나를, 그 아름다움을 눈과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철공소에서 수습공으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사회의 일원이 된 느낌을 맛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표현한 문장을 잠시 인용합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어 보았네요.
"한스는 난생처음 노동의 찬가를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 어쨌든 최소한 초보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취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작은 존재와 삶이 어떤 커다란 리듬에 합류해 어우러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

한스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표현 때문이었을까요? 한스의 기분을 고스란히 느끼며 빠져들어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한스의 죽음에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이제 사회 생활에 눈뜨고, 사랑의 맛을 보기 시작한 한스의 인생이 이 책의 클라이맥스쯤 됐겠지 생각했는데 그 시점에 한스가 죽은겁니다.
잠시 잠깐 저는 멍~한 상태로 책에서 눈을 떼고 한스의 인생을 빠르게 돌려보았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애처로운 한스의 짧은 삶. 많이 슬펐습니다. 책을 보다가 이 정도까지 감정이입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네요.

한 동안 이 책은 긴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나의 친한 친구가 죽은 것처럼이요. 한스는 내가 아는 한 아이로 계속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긴 드라마 한편보다 소설책 한 권이 값지다고 생각한 경우였습니다. 사람을 하나 얻었으니까요. 영화나 드라마 캐릭터에 아무리 감명을 받아도 그들이 제 지인같은 적은 없었습니다.

오늘의 One Book, One Action은,
고전 문학작품을 더 많이 읽자! 입니다. 상황과 설정, 배경, 사람의 심리, 감정 모든 묘사들에서 영상은 스치고 지나가버려 금세 잊히지만, 글로 표현된 책은 글자 하나하나가 마음에 새겨져 그 여운이 더 깊고 길고 크다는 것을 느끼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일상 속에서 혹은 내 일기에서 글이나 말로 표현이 어려울 때가 많아 나의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느끼며 답답해 했는데, 문학 작품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묘사된 부분들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모든 현상들을 표현하고 묘사하는 문학적인 분위기에 좀 익숙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번에는 필사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는데 조금 줄여서 이 정도입니다. 사람에 대한 심리묘사에 모순어법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게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 모순어법이 너무나 심리전달이 잘되어 감동적인 구절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스는 정말 존재하는 인물같은 느낌이었고 그가 성장하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일부분들에서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같아지고 싶은 마음과 구별되고 싶은 욕망이 공존했다. 어린아이의 잠에서 깨어난 많은 소년들이 이곳에서 난생처음 자신만의 개성을 키우기 시작했다. 애정과 질투로 인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하고 사소한 일들이 벌어졌다. 때로는 그것이 깊은 우정으로 발전해 마지막에는 함께 산책을 하는 다정한 사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강렬한 적대감의 표출로 이어져 격한 몸싸움과 주먹다짐으로 관계가 파탄 나기도 했다.

황혼이 긴 그림자를 드리웠고, 초겨울 숲에 불어온 세찬 바람이 신음하고 환호하며 미친듯이 마지막 춤을 추었다.

한스는 하일너 옆, 판자 다리 위에 앉아 다리를 물 위로 내려뜨리고는, 다리를 흔들면서 낙엽들이 고요하고 서늘한 허공을 가르며 갈색 수면 위로 소리 없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래된 기둥과 담장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제 영혼을 시로 표현하고 상상 속에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비밀스럽고도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정신의 소유자로 구속을 싫어했으며, 한스가 1년동안 할 법한 농담을 하루에 다 했다. 또한 우울한 가운데서도 자신의 슬픔을 처음 본 진기하고 귀한 보물처럼 즐겁게 받아들였다.

또 『오디세이아』도 있었다. 듣기 좋은 힘찬 울림으로 세차게 흘러가는 그 시구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물의 요정의 희고 포동포동한 팔이 수면 위로 쑥 떠오르는 것처럼 지금은 사라진 명료하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예감할 수 있었다. 그 예감은 때로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강렬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났고, 때로는 몇 마디 단어나 시구를 통해 꿈결처럼 어슴푸레하고 아름답게 나타났다.

성적과 시험과 성공이 기준이 아니라 양심이 깨끗한지 더러운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세상으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친구를 저버리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대부분의 아이들이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키가 부쩍 커졌다. 그래서 같이 자라지 못한 옷소매와 바지 끝단 밖으로 팔다리가 희망에 넘쳐 길게 삐져나왔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감정도 조금 상한 한스는 수레바퀴에 살짝 스친 달팽이가 더듬이를 거두고 달팽이집 속으로 기어들어 가듯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달콤한 불안이 밀려왔다. 눈앞에서 대담하게 깔깔거리며 웃는 젊은 아가씨가 문득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친밀하면서도 낯선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치마와 손이 스칠 때마다 두려움과 환희에 심장이 멎을 것 같았고,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한스는 입을 다문 채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대신 그녀가 다른 곳을 쳐다보면 얼른 고개를 돌려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환희와 양심의 가책이 동시에 밀려왔다.

멋진 그림처럼 아름답게 채색된 새로운 세상이 맑고 투명한 유리창 뒤에 서 있는 것 같았고, 세상 만물은 한바탕 축제가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처럼 들떠 보였다. (사랑에 빠진 한스의 시각)

가슴속에서 이건 부질없는 꿈일 뿐, 절대 현실일 리가 없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소심한 의구심과 두려움은 묘하게 무모한 감정과 눈부시게 강렬한 희망과 뒤섞여 달콤한 파도가 되어 물결쳤다. 서로 모순되는 느낌들이 신비한 샘물처럼 마구 솟구쳤다.

자살에 쓸 나뭇가지를 구하려 애쓸 때만 해도 한스는 그 모든 것을 작별을 앞둔 사람의 슬픈 우월감을 갖고 바라보았다.

그 비밀이 달콤할지 끔찍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불안한 가운데 어렴풋이 달콤하면서도 끔찍할 거라고 짐작했다.

한스는 그녀의 손을 제 빰에 가져다 댔다. 쾌감이 물결처럼 온몸을 훑고 내려갔고, 야릇한 온기와 행복한 피로감이 밀려왔다. 주변의 공기가 어쩐지 따스하고 촉촉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한스는 난생처음 노동의 찬가를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 어쨌든 최소한 초보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취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작은 존재와 삶이 어떤 커다란 리듬에 합류해 어우러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시각, 아버지가 그토록 벼르고 있던 아들 한스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어두운 강물을 따라 천천히 계곡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구토도 수치심도 슬픔도 이미 그를 떠났다. 차고 푸르스름한 가을밤이 희끄무레하게 떠내려가는 그의 여윈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커먼 강물이 그의 손과 머리카락, 창백한 입술을 장난치듯 어루만졌다.


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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